뜻밖의 토끼. 인간영역


 활동보조란 직업은, 사실 노동이라기보단 일상에 가깝다. 일상은 일상인데 습관을 벗어난 일상이라 하면 맞을까. 장애인의 속도, 장애인의 행동에 나의 일상을 맞추다보면, 나를 구성하는 것에 습관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 괴리를 극복하면 이 직업은 재미있는 시트콤이 되는 것이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월급조차 받기 싫은 괴노동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와이프와 함께 쇼핑을 나간 내 이용인께서, 휠체어에 앉은 채 유리장 속 토끼에 눈을 빼앗긴 건 불과 몇 시간 전 일이었다. 그 곁에 붙어 토끼의 둥그런 몸뚱이를 보며 히히덕거리던 나도, 그분이 어느 새 자기 키 높이에 있는 토끼사료를 손에 쥔 채 와이프에게 그윽한 눈빛을 보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삼십 분 쯤, 실랑이를 벌인 끝에 와이프는 마음 속 분양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태어난 지 3개월, 조금 큰 토끼라 무료로 분양받았다는 게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졸지의 나와, 이용자 와이프분의 활동보조는 토끼 집사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말았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라,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다. 활동보조야 햇수로 보면 2년째라 손짓 하나로 원하는 걸 찾아낼 수 있겠지만서도, 이 작은 토끼라는 것은 눈빛도 손짓도 보내길 거부한다. 내가 왜 화났는지 모르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상대가 말을 못알아들어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일단 박스에 사온 건초를 뿌리고 옷걸이를 구부려 물통을 걸어놓은 뒤 퇴근하긴 했는데, 버스에서 생각해보니 토끼는 눈에 보이는 건 먹고 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몇시간 후 토끼집의 상태가 기대된다. 그래, 그 집 내가 다 치운다.
 그래서 사실 궁금한 게, 먹이 급여 타이밍이었다. 어디서는 알팔파 건초는 무한급여하라 하고, 어디서는 일단 제한급여가 답이라 하는데, 일단 전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알팔파를 깔아놓고 오긴 했다만, 후자의 의견도 무시하긴 좀 그래서 고민된다. 뭐가 맞는 건지. 블로그란 게 이래서 어렵다. 


 사실, 이 블로그에도 연속되는 글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소설을 생각했지만 자꾸만 방문을 여는 한계라는 손님 때문에 좌절했고, 이후로 생각했던 것들도 성과는 없이 힘만 쏟을 것 같은 것 투성이였다. 힘 빼고 쓸 수 있는 일상적 이야기가 고팠던 게, 블로그 오픈 1년간의 욕심이기도 했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오래 두고 살게 된다면 나에게도 작은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을 조심스레 기대해보며, 잠에 들어야 할 것 같다. 

덧글

  • 푸른별출장자 2015/05/09 23:29 # 답글

    사진에 나온 모습을 보니 토돼지일 것 같군요...

    다 크면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제한 급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지나가던한량 2015/05/10 12:59 #

    나이에 비해 좀 큰 게 단순히 토끼의 특징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이 종의 발육이 무시무시한 것이었나 보군요.
    조언 감사드립니다:)
  • 블글 많이 읽었어요 2017/03/07 12:47 # 삭제 답글

    블로그 활동을 안해서 아이디 같은건 없고..
    요즘 풀리는 일이 없어서 힘들던 참에, 이런저런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글에 공감가는 글이 많아서 이렇게 댓글 한줄이라도 남겨봅니다. 저같이 님 글 읽으면서 공감도 하고 동질감 느끼는 분들 많을테니, 앞으로도 블로그 글들 꾸준히 써주시면 좋겠구요. 간간히 생각날때마다 또 찾아올께요. 여러 일 하면서, 글쓰는 쪽으로 준비하시는것 같은데 부디 하시는 일 계획대로 잘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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