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괴수행성 - 그가 고질라와 만나선 안되는 이유 잡설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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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같은 십덕들에게 우로부 치 겐은 과거의 김수현과 이환경, 현재의 김은숙과 같은 존재다.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각본가의 한계를 넘어, 이제 곧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작품으로 승화시켜버린 존재들. 이름이 곧 브랜드이자 작품인 그들은 연예인에 준하는 이름값과 명예를 얻고, 그들이 아직 풀지 않은 이야기조차 화제거리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은 자들. 그런다고 우로부치가 신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금 그에게 무워진 파워가 이 정도는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같은 영예를 안은 작가이지만, 우로부치도 사람이니만큼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아니, 애초에 그 스타일을 통해 이름을 알린 작가이니 다른 작가들보다 더 스타일에 대해 따져 볼 수밖에 없다. 그를 대변할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 가혹함, 잔혹함, 디스토피아, 가끔은 기괴함. 감독과 제작진의 입김이 적용되는 여러 분위들을 제외하고 나면 그를 표현하는 대중의 가장 쉬운 표현이란 그럴 것이다. 그러나 표현의 과격함이란 거죽을 한 장 벗기고 나면, 그 안의 흐름은 절대 잔혹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의 입신작 데몬베인도, 출세작 마마마도 완전한 절망을 추구하진 않는다. 이야기의 세 요소인 인물 배경 사건을 다룸에 있어 어둡지 않은 것이 하나 있겠는가 싶은데, 그 세 가지가 이뤄내는 흐름의 끝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 않다. 배경은 나락이고 사건은 어둠이지만, 인물의 내면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 우로부치는 그 몇 안되는 빛줄기를 집중해 끝끝내 어둡지만은 않은 미래를 암시한다. 이는 코즈믹 호러라기보다는, 신화 속 영웅들의 비극에 가깝다. 그들의 세계와 그들의 비극을 보며 공포를 느끼기보단, 숭고와 감동 어드메의 영역을 느끼는 것이다. 마마마의 발푸르기스나 가면라이더 가이무의 헬헤임 숲 같이, 실제로 그의 서사에는 다양한 신화적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지만, 그가 고지라라는 프렌차이즈를 맡으면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의 뛰어난 능력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는 고지라라는 괴수를 다룰 자격이 없다. 그의 서사의 근원인 그리스/로마와 북유럽 신화 속 신들과 고지라는 명백히 다른 생물이기 때문이다. 고지라는 헤라클래스와 오디세우스에게 뚝배기 따이고 다니던 퀴클롭스나 히드라가 아니다. 그런다고 심심하면 인간여자나 골라먹고 다닌 올림푸스의 제우스도, 로키한테 통수맞고 다니던 서민의 신 토르도 아니다. 좀 더 과거의, 좀 더 동쪽에서 믿어졌을 거대한 어떤 것에 가깝다. 용사 하나가 칼 한 자루 들고 감히 덤빌 생각조차 해선 안 될, 괜히 덤볐다간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 속)인류 전체에 심대한 해악이나 끼칠 것이기에 일단 칼자루 쥔 용사부터 제물로 바쳐 위기를 모면하기 급급할 존재. 고질라는 그 첫 등장부터 그런 존재였다. 비록 등장 장소의 문명화 척도가 조금 다르긴 하다만, 그래도 그 신과 대적하는 존재는 여전히 공포와 대면하면 신경이 곤두서는 인간이라는 종이고, 그들을 마주했을 시의 반응 역시 그 과거와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이 연속성이야말로 고지라라는 괴수가 인류 문화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던 원동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로부치의 고질라는 어떤가. 압도적인 힘으로 인류를 쫒아낸 배경설정과, 답이라곤 없어보이는 거대한 고지라 어스, 그 와중에 계속해서 벌어지는 인류간의 비극들. 여기까지는 우로부치만의 테이스트로 완성한 훌륭한 서사의 3요소가 정립되어 있다. 여기까지야 좋다 치는데, 그 창조주가 우로부치인 세계에서 결국 그 전개는 인간을 통해 귀결된다. 인간은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다, 달리 말해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는 테마를 끊임없이 주입하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물론 누가 우로부치아니랄까 그 과정은 몹시 비극적이다. 지략은 잔머리로 끝나고, 무기는 모두 파괴되며, 소중한 것은 하나하나 사라진다. 그런데 그 비극이 정녕 비극으로만 끝날지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주인공 하루오는 끝끝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소년만화식 주인공의 상이며,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그것을 버린 적은 없다. 그는 압도적 절망에 무력감을 느끼기엔 너무 강한 캐릭터이다. 역대 최대 크기의 고질라에 어울리는, 역대 최대급의 대 고질라 병기인 메카고질라 시티의 파괴는 주인공의 의지, 아니 인간의 의지가 우위에 있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읽혀진다. 인간을 버린 승리를 거부한 주인공은 전투의 패배와 소중한 이의 죽음을 목도했지만, 우로부치는 끝끝내 그것을 절망까지 끌어내리지 않았다. 차기작인 별을 먹는 자가 어찌 될 진 알 길이 없으나, 이야기를 전개함에 있어 주인공의 ‘Rise’는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유서 깊은 정석 전략이니 중반쯤엔 털고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안 그렇다면야 뭐, 그가 고질라 맡아도 되는 이유 식으로 글 하나 더 써드리겠다. 쓸 가능성은 적을 것 같지만.

 

이런 서사 속에서, 고질라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생각해봐야할 때다. 얼핏 인류에게 닥친 재앙을 맡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작중 보이는 모습은 그거 주인공을 겨냥한 시련의 중심 정도로 역할이 축소되어 있다. 무언가 강한 절망을 주는 시련이라기보다도, 그냥 주인공이 이겨내길 바라며, 성장하길 바라며 딱 힘을 맞춰서 주는 시련. 인류의 절망이어도 모자랄 괴수의 왕이 주인공의 렙업을 위해 거쳐가야 할 퀘몹이 되어버릴 위기에 진하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로부치의 지난 작품들을 되돌아봄으로서 그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로부치의 역량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전술했듯 인물 배경 사건의 테이스트는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든 편이었고, 본편 자체도 안 졸고 안 딴짓하고 잘 보았다. 그냥 단점 정도야 찾으면 금방 나오지만 영화란 감독의 예술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만드는 것이니 각본가 하나 갈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수많은 비판과 푸념이 단순히 제작역량의 한계만으로 보기엔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문제가 우로부치의 역량이 아닌 우로부치라는 각본가 그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다소 들었다. 그래, 우로붙이 겐, 당신은 인간을 다뤄야 하는 작가다. 고통받도록 설정된 인간을 보며 연민이든 쾌락이든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작가다. 그 시선을 살짝 돌려 우러러 보는 자, 아니 을 볼 수 있었다면, 굳이 이런 욕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역량이 아닌 스타일을 지적하는 것은 좋게말해 그 실력을 비판한 것이 아님과 동시에, 앞으로의 개선은 요원하다는 가슴아픈 추측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미 겉잡을 수 없어버린 이야기이니, 원하는 만큼 역량을 펼치고 말끔히 끝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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